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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공 응와선생 영당 부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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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중 자혜당 글씨는 근원 김양동 선생님이 20여년 전에 민학회 활동을 하시면서 성주 한개마을  응와세가를 방문하시고 

학정 이수학 선생의 부탁으로 일필휘지로 쓰신 글씨를  당시 덕산 남홍근씨가 판각한 것을  이번 기회에 칠을 다시해서 설치하였습니다.

"정헌공 응와선생 영당 부조묘" 현판 글씨도  근원  김양동 선생님께서 쓰셨으며, 전통서각의 명가 성헌서각에서 판각하여 완성하고

길일을 잡아서 설치하였습니다.


작품 규격: 37cm X 140cm  X  5cm

목재: 행목(은행나무), 양각, 단청안료칠.


아래의 정헌공 응와 이원조 선생에 대한 소개글은  서예가 도정 권상호 선생께서 제공하신 내용임을 밝힙니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소재한  "한개마을"은 성산이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부터 형성되어온 뿌리 깊은 양반 고을의 모습이다.

특히 한개마을내에 있는 응와세가(凝窩世家)는 정헌공(諡號) 응와(號) 이원조 선생의 고택으로 현재는 응와 선생의 후손인

학정 이수학 선생 내외분이 응와 선생의 가풍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선생은 순조 9년(1809) 18세에 문과에 급제한 다음 영남 출신의 학자로는 보기 드물게

경주부윤 , 한성판윤, 공조판서등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고종 8년(1871)에 세상을 떠날때까지 약60여 년이나 관직에 종사하셨던 인물입니다.

그는 19세기 영남 지역을 대표하는 관료였지만 동시에 수많은 작품을 창작한 문인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한시의 경우 3,000수를 상회합니다.

영당(影堂)은 영정을 묘서둔 사당. 부조묘(不祧廟)란 不遷位 祭祀의 대상이되는 신주를 묘셔둔 사당.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땅에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많았던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됩니다.

불천지위가된 분의 영정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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