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서각의 저변 확대 및 활성화 위해 힘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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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년 0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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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 뉴스메이커 |
링크 | http://www.newsmak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3214 |
전통서각이란 경판이나 현판과 같이 목재를 사용하여 우리 선조들의 서각 기법을 계승 발전시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새김질 예술의 뿌리다. 단풍나무나 자작나무, 느티나무, 참죽 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을 재료로 자연스러운 무늬를 그대로 살려서 각을 한 다음 토채나 석채, 각종 칼라를 사용하여 칠을하고 고풍스럽게 완성시키는 작품을 말한다.
▲ 김기철 각수 |
성헌서각의 김기철 각수는 전통서각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각수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김기철 각수는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에 걸쳐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경판 복원 작업 후 우리나라 최고의 각수로 재조명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국내 최고의 전통서각 각수가 되다
“사실 간판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제 이름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중요한 것이 신용입니다. 언제까지 작품을 만들어 납품을 하겠다고 고객과 약속을 하면 철저히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서각을 하면서도 변변한 현판하나 없는 시골집에서 해야할 작품에 묻혀 오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각수 김기철.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하는 그곳이 바로 전통서각의 명가인 성헌 서각이다. 지난 25년 동안 그는 서각 작품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고객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성실하다. 또 작품을 납품하고 나서도 고객들과 계속 연락을 하면서 작품이 훼손되지는 않았는지? 칠이 변색되지는 않았는지? 등 늘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하면서 친분을 유지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것이 애프터서비스입니다. 저의 작품에 만족을 하고 저의 인간적인 행동에 좋은 느낌을 가지신 분들이 또 다른 작품이 필요하거나 서각이 필요한 다른 고객들을 소개해 주십니다.”
최고로 손꼽히는 그의 실력과 진지한 노력, 고객에 대한 지극한 정성 덕분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의 작품을 받기 위해서는 일 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가능할 정도다.
좋은 인연으로 거듭난 인생
2000년도 능도 스님(현 동화사 부주지)은 당시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연구원 기획실장으로서 훼손된 팔만대장경 경판을 복원할 수 있는 각력이 10년 이상인 각수를 찾아 전국 각처에 수소문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각수 중에서 자기의 평소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해인사로 와서 숙식을 하면서 대장경 경판을 새길만한 사람은 전무했다.
그런데 어떻게 김기철 각수가 해인사로 와서 대장경 경판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1993년도에 10년 동안 근무한 서울시 행정직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그는 이듬해 경기도 광명시에서 남빛 서예학원을 설립해서 4년 동안 서예와 서각을 가르쳤다. 그러나 자기의 실력이 변변치 못해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한다. 1998년도에 서예학원을 정리 하고 강남에 있는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고 있던 중 2000년도 겨울에 해인사의 능도 스님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해인사로 와서 훼손된 팔만대장경 경판을 새겨보라”는 말씀이었다. 그는 “이것이 부처님과 함께할 좋은 인연이고 앞으로의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퍼뜩 깨달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고백한다.
그 후 김기철 각수는 2001년도에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해인사를 찾아가 해인사 각자장이 되었다. 2002년도에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 연구원에서 두 번째 스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현재 칠곡의 불광사 주지스님으로 계시는 관암 스님이시다. 김 각수는 “관암 스님은 대장경 판각에 대한 열의가 매우 높았으며 한편 자상하고 잔정이 많으셔서 제가 해인사에서 생활하는데 크게 의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관암 스님과는 거의 3년 동안 고락을 같이하면서 가장 많은 경판 작업을 했다.
2004년 가을부터 그는 해인사 성보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판각을 하였고 2005년 12월에 5년 동안의 해인사 생활을 정리하고 해인사에서 가까운 합천군 야로면에서 살면서 개인 적인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대중과 전통서각의 교두보 역할 수행
“처음에는 단지 취미 생활로 생각하며 서예와 서각을 배우고 익혔다.” 성헌 김기철 각수는 가문의 대를 이은 것도 아닌 평범한 청년 이면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최고 각수로 거듭난 사례다. 1987년도에 전통 서각가인 석촌 김상철 선생에게 이론과 실기를 터득한 김기철 각수는 1991년 부터 계명대학교에서 미대 학장을 지내셨던 서예가이며 한학자이신 근원 김양동 선생에게 한문 서예를 사사 받으면서 서각에 대한 이해와 안목이 크게 넓어 졌다고 한다. 근원 선생은 그에게 중국과 일본 각을 비롯해 우리나라 전통 서각가의 계보와 각의 특징까지 정확하게 알려 주었으며, 앞으로 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작은 이익에 연연해하지 말고 대승적인 마음으로 먼 앞날을 내다보며 모든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며 큰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종종 주문하셨다고 한다.
그는 현재 금강경 병풍을 새기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 다른 작품을 일체 맡고 있지 않다. 그는 “작품은 철학과 마음을 담고 임하는 것”이라며 “금강경을 새기는 작업은 금강경이 내포하는 의미를 새기는 것이지, 단지 글자만을 새기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경을 새기기 전에 내용을 깊이 공부하고 누락된 글씨와 잘못된 문장을 수십 번 확인하고 완벽하게 교정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가진 후에 작업을 해야만 후회나 거리낌이 없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김기철 각수는 KBS 이벤트인코리아(2003.4.29방영), 안동MBC 목판지향(2005.7.6방영),
SBS 모닝와이드(2011.10.1방영), OBS경인방송(2011.12.30방영), 일본NHK(2011.1.18 방영), 문화재청 홈페이지 국가기록유산 동영상 등에 출연하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해인사 팔만대장경축제와 합천 대야문화제 동화사 승시,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등 각종 체험행사에서 판각, 인경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중들과 서각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는 서각의 저변 확대 및 활성화를 위해서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